솔직히 저는 스승의 날이 되면 형식적인 카네이션 행사 정도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산대학교 김미향 교수님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제가 그동안 스승이라는 존재를 너무 가볍게 여겨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3세의 교수님이 뇌사 상태에서 간과 신장 두 개를 기증해 세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나셨다는 사실은,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20년 강단을 지킨 교수님이 쓰러진 날
지난달 17일, 김미향 교수님은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다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셨습니다. 바로 삼성창원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지셨습니다.
여기서 뇌사란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의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합니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만, 자발 호흡과 의식이 완전히 소실된 상태로 의학적으로는 사망과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와 혼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뇌사는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교수님은 내년 8월 정년퇴임을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서 가장 마음이 걸렸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정년을 코앞에 두고도 학생들의 장학금과 진로 상담을 위해 직접 발로 뛰셨다는 대목에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감동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임을 앞두면 슬슬 손을 놓기 마련인데, 교수님은 끝까지 현장에 계셨던 겁니다.
가족들은 고인이 평소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베풀기를 즐겼다는 점을 떠올리며 장기기증을 결심했습니다. 하나뿐인 외동딸 박다빈 씨는 "엄마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만큼 다른 환자들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저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뇌사기증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김미향 교수님은 간과 양쪽 신장, 총 세 개의 장기를 기증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 명의 환자가 새 삶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을 뇌사자 장기기증, 즉 뇌사기증이라고 합니다. 뇌사기증이란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의 장기를 이식대기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로, 국내에서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이 전 과정을 관리합니다.
실제로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는 약 4만 7천 명에 달하는 반면,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연간 400명대 수준에 불과합니다(출처: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수요와 공급 사이의 이 간극이 얼마나 큰지, 숫자만 봐도 체감이 됩니다.
장기이식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데는 HLA(조직적합성항원) 일치도가 핵심 기준으로 쓰입니다. HLA란 인체 면역 시스템이 자신의 세포와 외부 세포를 구별하는 데 사용하는 단백질 표지자로, 이 수치가 맞아야 이식 후 거부반응이 줄어듭니다. 쉽게 말해 열쇠와 자물쇠처럼, HLA가 맞는 기증자와 수혜자를 연결하는 것이 이식 성공의 핵심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의학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지기 쉬운데, 김미향 교수님처럼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로 접하고 나면 완전히 달리 느껴집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 절차를 한번도 알아본 적 없던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찾아봤습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 시 기증 가능한 주요 장기와 조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장: 이식 후 투석 치료를 대체하여 생존율을 크게 높임
- 간: 부분 이식도 가능하며 재생 능력이 있어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 생존 가능
- 심장: 뇌사 기증에서만 가능하며 수혜자에게 유일한 치료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음
- 각막: 시각을 회복시켜 주는 이식으로, 심장정지 후에도 기증 가능
- 뼈, 피부 등 조직: 화상 환자나 정형외과 수술 환자에게 광범위하게 쓰임

스승의 날에 이 소식이 주는 의미
저는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왜 하필 스승의 날 즈음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맞는 타이밍이 없다 싶었습니다.
요즘 스승의 날을 둘러싼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저도 느낍니다. 교권 침해, 과보호 문화,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갈등 등 여러 문제들이 쌓이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 관계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려워진 구조적 문제도 있고, 반대로 자녀를 과보호하다 보니 교사의 정당한 지도까지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늘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김미향 교수님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로 다가왔습니다. 20년 근속 공로패를 받은 성실함, 정년 직전까지 학생 장학금을 직접 챙기던 열정,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남긴 세 개의 장기. 이것이 교수님이 삶 전체로 가르친 내용이었습니다. 제자 고태민 씨가 "교수님다운 선택"이라고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뇌사 판정 이후 장기기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는 뇌사판정위원회의 공식 판정이 필요합니다. 뇌사판정위원회란 의료법에 따라 설치되는 전문가 위원회로, 다수의 전문의가 참여해 뇌사 여부를 엄격하게 확인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가족의 동의만으로 기증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공식적이고 엄격한 의료 절차를 거친다는 점도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부분입니다.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는 2023년 기준 약 370만 명 수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등록률이 여전히 낮은 편입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제 경험상 막연한 거부감이나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번에 찾아보기 전까지는 어디서 어떻게 등록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김미향 교수님의 마지막 선택이 단순한 감동 스토리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승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좋지만, 오늘 하루 장기기증 희망 등록 페이지를 한번 찾아보는 것이 교수님의 가르침을 진짜로 잇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딸 박다빈 씨가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해보겠다"고 한 말처럼, 저도 이번을 계기로 막연히 미루던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