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피드를 넘기다가 "설마 저게 진짜야?" 싶어서 멈춘 적 있으신가요. 저도 이번 무신사 논란을 처음 접했을 때 딱 그 느낌이었습니다. 2019년에 게시됐다가 조용히 묻혔던 광고 하나가, 2025년 현직 대통령의 SNS 한 줄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무신사 '탁 치니 억' 카드뉴스 논란, 팩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카드뉴스 한 줄이 불러온 파장
이번 논란의 시작은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엑스(X) 계정에 무신사의 과거 광고 이미지를 직접 공유하면서부터입니다. 대통령이 특정 브랜드의 마케팅 콘텐츠를 거론하며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라고 표현할 정도면, 그 파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이 오실 겁니다.
문제가 된 콘텐츠는 2019년 7월 2일 무신사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속건성 양말 홍보용 카드뉴스입니다. 카드뉴스(Card News)란 정보를 이미지와 짧은 텍스트로 조합해 SNS에서 유통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콘텐츠 포맷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한 장 한 장 넘기도록 구성된 이미지형 광고입니다. 이 카드뉴스에는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가 전면에 사용됐습니다.
제가 처음 이 문구를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원문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이 단순히 말장난으로 쓰일 수 있는 성격의 문구가 아니라는 건, 조금만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19년 7월 2일: 무신사 공식 인스타그램에 해당 카드뉴스 게시
- 당시 즉각 논란 발생 → 무신사 공식 사과 및 박종철기념사업회 방문
- 2025년: 이재명 대통령 엑스(X)에 해당 광고 공유하며 재점화
- 대통령, "6월 민주항쟁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광고"로 규정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
이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 학생이던 박종철 씨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치안본부는 이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신사가 패러디한 문구의 원문입니다.
고문치사(拷問致死)란 수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인해 피의자나 참고인이 사망에 이르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한 인권 침해를 넘어 형사법상 중대한 범죄 행위에 해당하며, 이 사건은 이후 6월 민주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습니다.
6월 민주항쟁이란 박종철 사건과 전두환 정권의 호헌 조치에 반발해 1987년 6월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입니다. 이 항쟁의 결과로 6·29 민주화 선언이 이끌어지며 대통령 직선제가 헌법에 반영되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즉, 오늘날 우리가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것은 이 항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해당 문구가 왜 문제인지 감이 잘 안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브랜드의 마케팅 콘텐츠를 만드는 담당자라면 이 정도 검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신사의 해명, 납득이 되셨나요
당시 무신사는 공식 사과문을 내고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직접 방문해 사과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사과문에서 무신사는 "홈페이지(무신사 매거진)에는 검수 과정을 통해 해당 문구가 삭제됐으나, SNS 발행에서는 검수 결과 반영이 누락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여기서 콘텐츠 검수 프로세스(Content Review Process)란 브랜드가 외부에 공개하는 광고·홍보 콘텐츠를 게시하기 전에 법적·윤리적·역사적 문제 여부를 사전에 점검하는 내부 절차를 말합니다. 규모가 있는 플랫폼이라면 이 절차는 복수의 담당자가 단계별로 확인하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저도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매거진 채널에서는 삭제됐는데 SNS 채널에서는 그대로 올라갔다는 게,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에는 관리 체계 자체에 구멍이 있었다는 방증 아닐까요. 문구 하나가 통과됐느냐 안 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애초에 그 문구가 초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브랜드 리스크 관리(Brand Risk Management) 측면에서도 이건 심각한 사례입니다. 브랜드 리스크 관리란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식별하고 차단하는 전략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마케팅 카피에 활용하는 것은 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계가 필요한 영역입니다(출처: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역사왜곡과 마케팅 윤리, 어디까지가 선인가
도대체 이런 문구는 왜 쓰이는 걸까요. 저도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마케팅 카피는 기본적으로 '주목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친숙한 표현, 약간의 비틀기, 유머 코드, 이런 요소들이 클릭을 유도합니다. 문제는 그 '비틀기'의 소재를 어디서 가져오느냐입니다.
SNS에서는 고인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왜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가끔 접합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 사건을 직접 겪었다고 해서 이를 조롱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비극은 어떤 식으로도 소비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논란이 2019년 사건임에도 2025년에 다시 불거진 것은, 온라인 아카이빙(Online Archiving)의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온라인 아카이빙이란 인터넷에 게시된 콘텐츠가 삭제 후에도 캡처나 캐시 형태로 장기간 보존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한번 올라간 콘텐츠는 지워도 기록이 남는다는 의미입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과거의 실수가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성장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과거의 콘텐츠 하나하나가 더 강한 파급력을 갖게 됩니다. 규모가 클수록 검수의 책임도 그에 비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을 보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역사적 사건, 특히 누군가의 죽음과 억압에서 비롯된 문구는 마케팅 언어로 절대 소환되어선 안 됩니다. 무신사가 당시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이 논란을 종결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왜 그 문구가 초안에 담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각 브랜드의 콘텐츠 검수 체계가 역사·윤리적 감수성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