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마라톤 대회에 처음 출전하기 전까지, 결승선이 그냥 '도착 지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결승선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몇 달간의 훈련과 자존심이 압축된 순간이라는 걸. 그래서 이번 보스턴 마라톤 130주년 대회에서 나온 이 이야기가 저한테는 유독 크게 다가왔습니다.

결승선 300m 앞에서 일어난 일
2025년 4월 20일, 130회를 맞은 보스턴 마라톤(Boston Marathon)에서 한 장면이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보스턴 마라톤은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World Marathon Majors) 중 하나로, 여기서 '메이저 마라톤'이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6개의 마라톤 대회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참가 자격 자체에 엄격한 기록 기준, 이른바 BQ(Boston Qualifier)가 적용됩니다. BQ란 연령대별로 정해진 최소 완주 기록을 충족해야만 출전권이 주어지는 자격 기준을 뜻합니다. 아무나 출전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무대에서 대학생 참가자 아제이 하리다세는 결승선을 불과 300m 앞두고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마라톤에서 이 상태를 흔히 '보닝(bonking)' 또는 '히팅 더 월(hitting the wall)'이라고 부릅니다. 히팅 더 월이란 근육 내 글리코겐(glycogen), 즉 에너지원이 고갈되면서 몸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거나 보급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데, 이 상태가 오면 의지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영국 국적의 에런 베그스와 브라질 국적의 올리베이라가 달리던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두 사람은 아제이를 양쪽에서 부축해 세웠고, 셋은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세 나라 사람이 같은 결승선 테이프를 끊은 겁니다.
이 장면이 퍼지자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 화두에 올랐는데, 스포츠맨십이란 단순히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번 사건은 그 개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 장면이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로 '공정성과 존중'을 핵심에 두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올림픽위원회).
이번 사건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제이 하리다세: 결승선 300m 전 탈진, 히팅 더 월 상태
- 에런 베그스(영국): 쓰러진 아제이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멈춤
- 올리베이라(브라질): 합류해 반대편에서 부축
- 세 사람: 서로 다른 국적, 처음 만난 사이, 나란히 완주
마라톤을 뛰어봤기에 더 크게 보이는 것들
저도 10km 마라톤 대회에 직접 출전해봤습니다. 그때 느낀 건, 마라톤이라는 종목에서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페이스(pace), 즉 킬로미터당 소요 시간을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줄여가며 대회 당일을 준비합니다. 그 숫자 하나를 위해 새벽 훈련을 버텨낸 사람들이라면, 결승선 앞에서 남의 손을 잡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뉴스를 보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실제로 뛰어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레이스 후반부에는 옆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호흡,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집중됩니다. 에런 베그스가 인터뷰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싸우는 쪽을 택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멈추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결정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쓰러진 아제이 옆을 그냥 지나친 수많은 다른 참가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중간에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참가자가 생각보다 많이 나옵니다. 의료 지원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참가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 사람도 금방 일어나겠지", "의료팀이 올 거야"라는 판단을 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상황 판단의 차이였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신체 활동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마라톤과 같은 고강도 지구력 운동(endurance exercise) 중 심박수가 최대치에 근접하면 판단력과 주의력이 현저히 저하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구력 운동이란 장시간 동안 산소를 소비하며 근육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을 가리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달리 말하면, 레이스 막바지에 곁눈질할 여유가 생리학적으로도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에런 베그스와 올리베이라가 한 선택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전제 위에서 이 이야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장면의 무게가 제대로 느껴집니다.
결국 이 이야기가 저한테 남긴 건 한 가지입니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지만, 가끔은 옆 사람이 쓰러지는 걸 알아채는 시선도 훈련해야 한다는 것. 마라톤이든 일상이든, 그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이 결국은 더 멀리 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보스턴 마라톤의 세 사람이 그걸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