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을 사는데 왜 환율이 문제가 될까요?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삼성전자 주식을 원화로 사고 있는데 원달러 환율이 무슨 상관인지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 환율과 주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인플레이션이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동시에 겪은 물가 상승, 베네수엘라처럼 화폐가 종이조각이 되어버린 나라들, 그리고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 달러. 이 모든 게 저희 지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직접 경험하며 깨달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화폐가치와 실질임금의 관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화폐의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드는 겁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6%를 기록했는데요(출처: 한국은행), 이게 제 월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계산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작년 월급이 200만 원이었고 올해 21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해봅시다. 명목임금(Nominal Wage)은 10만 원 상승했지만, 물가 상승률 2.3%를 감안하면 실질임금(Real Wage) 상승률은 고작 2.7%입니다. 여기서 실질임금이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제 구매력을 의미합니다. 10만 원 올랐다고 좋아했는데 실제로는 5만 4천 원 정도의 구매력만 늘어난 셈이죠.
이런 현상을 화폐착각(Money Illusion)이라고 합니다. 숫자로 표시된 명목 금액만 보고 실제 가치를 착각하는 겁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까요? A는 물가 2% 상승 시 월급 동결, B는 물가 4% 하락 시 월급 2% 삭감. 실질임금은 똑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A를 더 손해라고 느낍니다. 숫자가 주는 안정감 때문에 우리는 돈이 고정된 가치를 가진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저도 주식 공부를 하면서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제가 보유한 주식의 액면가가 올라도,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실질 수익률은 생각보다 낮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달러 보유고와 국가의 힘
외환보유액(Foreign Exchange Reserves)이란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국 통화와 금, 특별인출권(SDR) 등의 총액을 말합니다. 여기서 특별인출권이란 IMF가 발행하는 국제 준비자산으로, 달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2024년 12월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157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입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그런데 왜 모든 나라가 달러를 쌓아두려 할까요? 바로 달러가 기축통화(Reserve Currency)이기 때문입니다. 기축통화란 국제 거래와 결제에 가장 널리 쓰이는 통화를 뜻합니다. 미국이 이 특권을 가지면서 생긴 이점은 엄청납니다.
다른 나라들이 화폐를 많이 찍어내면 화폐가치가 곧바로 폭락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전 세계가 달러를 원하기 때문이죠. 팬데믹 시기 미국은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달러 가치가 폭락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가 그 인플레이션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셈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를 보면 더 극명합니다. 1994년 100달러를 바꾸면 99 아르헨티나 페소였는데, 2024년에는 수만 페소를 받게 됩니다. 환율이 유리해진 게 아니라 자국 화폐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겁니다. 최근 인플레이션율이 200%를 넘으며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상태에 빠졌죠. 초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매달 50% 이상 오르는 극단적 상황을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베네수엘라가 궁금해졌습니다. 화폐가치가 완전히 붕괴된 나라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달러를 보유하고 있기에 이렇게 됐을까요? 아마 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났기 때문일 겁니다. 국가의 신용도와 달러 보유액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물물교환 경제에선 인플레이션이 없습니다. 화폐가 있어야 인플레이션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누가 인플레이션을 만들까요?
정답은 정부입니다. 국가가 필요한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하기 어려울 때, 화폐를 찍어냅니다. 전쟁 비용, 대규모 건설 사업, 복지 지출 등이 필요할 때마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화폐 발행량을 늘렸습니다. 전후 독일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폐량이 늘어나도 생산량이 같이 늘면 물가는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생산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화폐량이 생산량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할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이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금입니다. 의회의 승인 없이도 국민의 구매력을 빼앗아가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제가 이해 안 됐던 부분이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데, 왜 경제가 어려울 때 현금이 안전자산으로 분류될까요?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기에는 금과 현금 수요가 늘어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현금을 들고 있으면 손해입니다. 아마 '현금'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 때문에 착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건 빚을 진 사람은 인플레이션 시기에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팬데믹 때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은 사람이 있다면,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빚의 실질 부담도 줄어듭니다. 1억을 빌렸는데 1년 뒤 인플레이션이 3%라면, 그 1억의 실질 가치는 약 9,7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빚이 녹는다는 표현이 여기서 나옵니다.
반대로 돈을 빌려준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의 재분배 효과입니다. 인플레이션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누군가에게로 부를 이전시킵니다.
인플레이션은 우리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명목으로 오른 월급에 속지 말고 실질 구매력을 따져봐야 합니다. 화폐가치는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변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각국 정부의 통화정책과 미국 달러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수익률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 환율 변동성, 그리고 장기적인 화폐가치 흐름까지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할수록 궁금증은 더 커지지만, 적어도 이제는 뉴스에서 환율과 물가 이야기가 나올 때 제 돈과 어떤 관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