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과장이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공놀이도 못 하고, 운동회에서 1등도 없는 학교. 지금 이 나라 교실이 처한 현실입니다.
박탈감 민원이 만들어낸 '아무것도 안 하는 학교'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수학경시대회가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제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이유가 "상을 못 받은 아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학부모 민원이었으니까요. 저도 어릴 때 상을 못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속상했죠. 그런데 그 속상함이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인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란 자신과 타인을 비교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결핍감을 의미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 감정을 적절히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아동의 정서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그 경험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상황은 교내대회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축구, 야구, 피구 같은 공놀이도 금지된 학교가 늘고 있습니다. "다칠 수 있다", "잘하는 아이만 인기가 생긴다"는 민원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넘어지고, 져서 속상해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는 법, 다시 일어서는 법 같은 것들이요. 그걸 배울 기회가 지금 아이들한테는 없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잃어가고 있는 경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내 글쓰기·그림 그리기·수학경시대회 등 각종 대회 참가 경험
- 쉬는 시간 공놀이(축구, 야구, 피구 등)를 통한 신체 활동
- 계주, 단체 줄넘기 등 운동회 경쟁 종목 참가 경험
- 팀 프로젝트(팀플)를 통한 협업 경험
- 단체 사진 촬영, 잡기 놀이 등 또래 관계 형성 활동
캥거루 부모가 키우는 아이, 어떤 어른이 될까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계주 대표를 선발하면 탈락한 아이들이 기죽는다는 민원이 들어와 '전교생 이어달리기'로 운동회 방식을 바꿨습니다. 운동회의 계주(繼走), 즉 이어달리기는 팀원이 바통을 이어받아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경험하는 종목입니다. 빠른 아이가 대표로 뛰고, 느린 아이가 응원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구조 자체를 없애버린 겁니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더 인상적인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계주 선수로 선발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교사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학부모가 직접 아이의 귀를 막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말문이 막혔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은 아예 차단하는 법을 아이에게 몸소 가르치는 셈이니까요.
이처럼 자녀를 주머니 속 새끼처럼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캥거루 부모(helicopter parenting과 유사한 개념)'라고 합니다. 여기서 캥거루 부모란 자녀가 어떤 실패나 불편함도 겪지 않도록 과도하게 개입하고 보호하는 양육 방식을 가리킵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은 이 양육 방식이 오히려 아이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즉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합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예체능 수업의 팀 프로젝트가 전면 폐지되었습니다. "다른 팀원 때문에 내 아이 점수가 낮아졌다"는 민원이 학년 전체 교과 팀플을 모두 개인 평가로 바꿔놓은 겁니다. 협동 학습(cooperative learning)은 단순히 함께 과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협동 학습이란 집단 목표를 위해 서로 의존하면서 갈등을 조율하고 책임을 나누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 방식입니다. 취업 시장에서, 직장 생활에서, 사회 곳곳에서 요구되는 바로 그 역량이 학교에서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시험 문제 하나에도 학부모가 직접 모든 문항을 풀고 민원을 넣거나, 인근 학원에서 학부모인 척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는 현장 교사의 증언은 제가 읽으면서 손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교육 회복, 제도적 보호막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학교 현장의 외부 활동과 체험 학습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을 직접 지적했습니다. "단체 활동과 현장 체험도 큰 학습"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가 구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교사들이 민원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을 보호해줄 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여기서 아동학대처벌법이란 아동에 대한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및 방임을 범죄로 규정하고 엄중히 처벌하는 법률을 말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법이 교사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교사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직업적 타격을 주는지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교원 5명 중 1명이 교직 생활 중 아동학대 신고를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목격했다고 응답했을 정도입니다(출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악성 민원에 교육감이 직접 대응하는 시스템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국가가 소송을 대리하는 '국가 소송 책임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교원 보호 요구가 아니라, 결국 아이들을 위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교사가 소신껏 가르칠 수 없는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으니까요.
교육부 역시 학교폭력 및 민원 관련 교원 보호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지만, 현장과의 온도 차가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출처: 교육부).
아이가 경쟁에서 지는 경험, 팀원과 갈등을 조율하는 경험, 1등이 아닌 자리를 받아들이는 경험. 이 모든 것이 교실 밖에서는 훨씬 가혹한 방식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그 연습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입니다. 제도적 보호막을 갖추는 것, 그게 교육 회복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