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반 토막 났는데 오히려 매수를 늘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하면 믿어지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1분기 숫자만 보고 "이거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미반도체 1분기 매출액은 509억 원, 영업이익은 8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5.5%, 87.9% 급감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숫자의 맥락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분기 부진의 진짜 이유, TC본더 공백
한미반도체의 이번 1분기 실적 부진을 이해하려면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TC 본더란 반도체 칩을 기판 위에 열과 압력을 동시에 가해 정밀하게 접합하는 장비입니다. 쉽게 말해, HBM처럼 여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고대역폭 메모리 패키징 공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장비입니다. 저도 반도체 공부를 하면서 이 장비의 위상을 직접 확인했는데, HBM 생산 라인에서 TC 본더 없이는 공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1분기에 이 TC 본더 매출이 고작 40억 원에 그쳤다는 점이 실적 부진의 핵심입니다. 주요 고객사의 HBM4 투자가 2분기 이후로 이연된 탓입니다. HBM4(High Bandwidth Memory 4)는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가속기 수요를 등에 업고 대규모 투자 사이클이 형성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투자 타이밍이 한 분기 밀렸을 뿐인데, 숫자상으로는 마치 회사 펀더멘털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긴 겁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처음에 예상 밖이었습니다. 1분기 수치만 보고 주가가 출렁이면, 기업의 실제 가치가 아니라 단기 심리에 반응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기업 가치와 역량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매수·매도를 반복하는 흐름이 주가 방향성을 흐리는 상황, 이번에도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1분기가 완전히 빈손은 아니었습니다. MSVP(Micro Saw & Vision Placement)가 202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40.5% 성장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MSVP란 반도체 웨이퍼를 초정밀 절단하고 칩을 정확한 위치에 배치하는 장비 기술을 말합니다. 후공정(OSAT) 투자가 다시 살아나는 흐름 속에서 이 부문이 확실한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해줬습니다. 여기서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란 반도체 칩의 패키징과 테스트 공정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외주 서비스 기업들을 의미합니다. OSAT 투자가 재개된다는 것은 곧 장비 수요가 살아난다는 신호입니다.
1분기 핵심 지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TC 본더 매출: 40억 원 (HBM4 투자 이연 영향)
- MSVP 매출: 202억 원 (전년 대비 140.5% 증가)
- EMI 차폐 매출: 33억 원 (전년 대비 83.3% 증가)
- 전체 영업이익: 85억 원 (전년 동기 대비 87.9% 감소)
2분기 V자 반등과 신규 모멘텀의 현실성
2분기 전망 수치가 처음 눈에 들어왔을 때, 저는 잠깐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매출액 2,276억 원, 영업이익 1,103억 원. 1분기 대비 거의 10배 이상 뛰는 구조입니다. 이 숫자가 현실적이냐고 물으신다면, 수주잔고가 이미 쌓여 있다는 점이 핵심 근거가 됩니다. 실적이 빠졌다고 수주까지 빠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출하 타이밍이 2분기로 집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미 핵심 고객사 방향으로의 TC 본더 출하 본격화가 이 V자 반등의 엔진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반기 모멘텀까지 구체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2.5D 패키징용 신규 장비가 중화권 파운드리 및 OSAT 업체로 공급될 전망이고, HBF(High Bandwidth Flash)용 TC 본더라는 신규 먹거리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HBF는 기존 D램 기반의 HBM 구조를 낸드 플래시 기반으로 확장한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입니다. AI 서버의 저장·연산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각광받고 있어, 여기에 TC 본더 수요가 붙기 시작하면 한미반도체의 주소득원이 한 가지 더 생기는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의 기업은 단기 주가 흐름보다 사이클을 보는 게 맞습니다. 저는 현재 소량이지만 한미반도체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매도 의견은 없고, 매수 의견은 오히려 강합니다. 다만 현재 주가 수준이 아직 체감상 살짝 높게 느껴져서 추가 매수를 주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금 더 눌린다면 충분히 매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연간으로 보면 매출액 7,850억 원, 영업이익 3,694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6.1%, 46.9% 증가하는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됩니다. 한국거래소 공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 장비 섹터 분석에서도,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패키징 장비 수요 집중 현상이 2025~2026년에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AI 가속기 수요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한미반도체는 TC 본더 분야에서 독보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이 기업이 단순한 테마주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 장벽이 명확하고, 고객사 교체 비용이 높은 구조입니다. 1분기 숫자가 무너졌다고 기업의 경쟁력이 흔들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번 1분기 실적은 '부진'이라기보다는 '눌림'에 가깝다고 봅니다. TC 본더 매출 공백은 일시적이었고, MSVP와 EMI 차폐가 버텼으며, 수주잔고는 2분기 이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단기 주가 변동에 흔들리기보다는 장비 사이클과 고객사 투자 타이밍을 함께 보는 것이 더 현명한 접근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